양자컴퓨터 연구자인 줄 알고 찾아갔는데 약간 달랐다. 지난 4월에 만난 이동헌 고려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는 “양자컴퓨터도 하는데 양자센싱 연구자라고 나를 표현하는 게 정확하다. 양자센싱(quantum sensing) 및 양자이미징(quantum imaging) 쪽에 집중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양자센싱이 무엇일까? 이 교수는 “물리학자들이 발견한 양자효과를 실생활에 사용하려고 하는 걸 양자기술이라고 한다. 양자기술을 이용해 컴퓨팅을 하면 양자컴퓨팅이고, 그걸로 멀리 보내면 양자통신이고, 그걸로 정밀 측정을 하면 양자센싱이다”라고 설명
차재춘 포항공과대학교 수학과 교수는 “학교 다닐 때는 수학을 별로 잘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지난 4월 8일 포항공대 수리과학관 내 ‘위상수학연구센터’에서 만난 그는 “나는 수학을 싫어했다. 아니 싫어했다기보다는 좋아하지 않았다”라고 했다. ‘위상수학연구센터’는 한국연구재단의 리더연구자 지원 사업. 리더연구자 지원 사업은 개인 연구자를 대상으로 하는 지원 사업 중 최상위 지원 제도다.차 교수는 “반면 과학기술에는 꼬마 때부터 관심이 많았다”라고 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컴퓨터를 좋아했는데 게임에는 관심이 없었고 프로그래밍을 좋아했
한양대 생명과학과 최제민 교수(면역학)는 “한양대 교수가 될 때까지는 밀려 밀려 살았다”라고 말했다. ‘밀려 밀려 살았는데 교수가 되었다’는 그의 말에 어리둥절했다. 지난 3월 25일 만난 최 교수는 연세대 생명공학과 96학번이다. 대학 입시 합격자 발표 명단에는 이름이 없었고 추가 합격으로 들어갔다. 재수까지 했는데, 추가 합격을 하니 속이 편치 않았다. 대학 4년간 똘똘하게 보이는 동기 사이에서 조용히 지냈다. ‘밀려 밀려 교수가 되었다’공부 잘하는 학과 동기 친구들은 의과대학과 치과대학 편입을 하기도 했다. 대학원 갈 때도 해
에르되시 팔(1913~1996)은 헝가리가 낳은 천재수학자다. 내 책장에도 이 수학자의 책 두 권이 있다. ‘우리 수학자 모두는 약간 미친 겁니다’(승산)와 ‘화성에서 온 수학자’(지호)다. 사놓고 잘 읽어보지는 않았다. 에르되시는 어록으로도 유명한데 그중 하나가 “수학자는 커피를 정리(theorem)로 바꾸는 기계”라는 말이다. 수학자들은 커피를 많이 마시고, 수학 연구소는 특히 맛있는 커피를 잘 만든다는 의미라고 한다. 커피 이야기 말고 정작 에르되시가 수학에서 뭘 기여했는지는 잘 몰랐다. 지난 3월 23일 만난 카이스트 수학자
수학자들을 취재하기 위해 수소문을 했다. 우선 서울대학교 수학자 중 누구를 꼭 만나야 하는지를 학자들에 물었다. 하승열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 교수가 그중 한 명이었다. 서울대 수리과학부 웹사이트에는 그가 ‘비선형 편미분방정식’을 연구한다고 기재돼 있다. 지난 3월 15일 하 교수를 만나러 서울대학교로 찾아갔다.하승열 교수는 서울대 수학과 91학번. 1990년에 사범대학교 수학교육과를 지원했다가 떨어졌고, 재수를 해서 다음해 자연대학교 수학과에 들어갔다. 수학교육과보다 수학과의 커트라인이 높으니, 성공한 재수다. 그는 당초 수학과를
대전 카이스트 문지캠퍼스에 액시온(axion)이라는 미지의 암흑물질 입자를 찾는 물리학자 수십 명이 있다. 이들은 기초과학연구원(IBS) 산하의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단장 야니스 세메르치디스) 소속이다. 액시온은 윔프와 함께 암흑물질 양대 후보다. 암흑물질 후보는 많으나, 이런저런 걸 따져보면 가장 있을 법하다고 해서 물리학자들은 액시온과 윔프 두 개를 유력하게 보고 있다. 암흑물질은 눈에 보이지 않으나, 눈으로 보이는 물질보다 5배나 많다고 추정된다. 암흑물질의 정체를 밝혀내는 게 21세기 물리학의 큰 도전이다.눈에
지헌영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약리학교실)가 OMIM이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보여줬다. 지난 2월 28일 연세대 에비슨의과학연구센터 2층의 지헌영 교수 연구실. OMIM이란 사이트는 처음 본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구축한 사이트인데 OMIM(Online Mendelian Inheritance in Man)은 ‘사람의 멘델 유전 온라인’이라는 뜻이다. 유전질환과 그로 인한 증상, 즉 표현형을 정리해 놓은 사이트다. ‘멘델 유전질환’은 유전자 한 개의 돌연변이가 일으키는 유전질환이다. 유전자 몇 개의 돌연변이가 원인인 복합질환도
울산과학기술원 임정훈 교수는 초파리 생물학자다. 초파리의 하루 주기 생활 리듬을 연구해왔다. 그 과정에서 루게릭병도 연구하게 되었다. 울산과기원 110동 5층 505-1호실 입구에 ‘초파리 실험실’이라고 쓰여 있다. 지난 2월 24일 임정훈 교수를 따라 초파리 실험실에 들어가니 시큼한 냄새가 났다. 초파리가 들어 있는 작은 유리병, 즉 바이알이 실험실 벽에 가득 쌓여 있다.한쪽 테이블 위에 ‘초파리 활동 모니터’라고 쓰인 장비가 있다. 들여다보니 작고 가는 유리 실험관 모양 안에 초파리가 한 마리씩 들어 있다. 초파리가 걸어서 왔다
정연석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교수가 면역학자인 줄만 알고 갔다. 그의 연구실 웹사이트를 살펴봤지만 연구의 흐름을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았다. 지난 2월 19일 만난 정 교수는 “나는 CD4+T세포를 연구하는 면역학자”라고 말했다. CD4+T세포는 처음 듣는다. 그게 무엇인지는 천천히 말하기로 하자. 그가 “두서없이 말하겠다”라고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화학과와 의대의 타협이 약대그는 서울대학교 약대 93학번이다. 고교를 졸업하고 화학이 막연히 재밌겠다고 생각해 화학과를 지원하려고 했다. 고3 담임 선생님은 “화학 하면 굶는다”라며 대
충남대학교 물리학과 박종철 교수는 암흑물질 이론 연구자다. 그는 2019년 4월 대전 롯데시티호텔에서 포스코 청암재단이 주최한 ‘청암 펠로 학술교류회’에 참석했다. 지난 2월 10일 충남대에서 만난 박종철 교수는 “청암 펠로 학술교류회의 물리학 분과 모임은 좋은 연구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자리라서 매해 갔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곳에서 포항공대 응집물질 물리학자 이길호 교수 발표를 들었다. 이 교수는 그래핀이라는 물질과, ‘조셉슨 접합’ 원리를 갖고 아주 예민한 센서를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그래핀은 탄소 원자 한 개 층으로 된 물
이민구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약리학교실)는 1996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로 갔다. 그가 박사후연구원으로 적을 두게 된 학교는 텍사스대학교 사우스웨스턴의과대학. 가보니 사우스웨스턴의대에 노벨상 수상자가 4명이나 있었다. 지난 2월 9일 만난 이민구 교수는 “텍사스는 1870~1880년대 석유가 쏟아져 나오면서 돈이 넘쳤다. 텍사스대학(University of Texas)에 의대가 4개 있는데, 그중 사우스웨스턴의대가 제일 좋고 유명한 사람이 많았다”라고 말했다.이민구 박사는 이때 시무엘 무알렘(Shmuel Muallem) 교수에
김명희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인체와 미생물의 상호작용을 연구한다”라고 했다. 지난 1월 20일 대전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만난 김 박사는 박사과정 때는 미생물학을 공부 했다. 박사후연구원 때는 구조생물학을 공부했는데 구조생물학자는 단백질, DNA, RNA의 입체 구조를 밝혀 그 기능을 분자 수준에서 이해하려고 한다. 그는 올해 한국구조생물학회 부회장이고 한국결정학회 회장으로도 일한다. 구조생물학자의 주요 도구 중 하나가 엑스선결정학이니, 김명희 박사가 왜 구조생물학과 결정학이라는 두 분야 학회에서 활동하는지 이해할 수 있
벽에 걸린 액자 속 ‘네이처’ 표지 4개가 훈장처럼 반짝반짝한다. 네이처는 최상위 과학 학술지.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서성배 교수 방이다. 네이처에 실린 논문 중 두 개는 미국에서 썼다.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 박사후연구원 시절인 2004년, 뉴욕대학교 교수(2007~2018)로 일하던 2010년의 성과다. 다른 두 개는 2018년 귀국해서 카이스트 교수로 일하면서 썼다. 귀국한 다음해인 2019년에 한 편, 그리고 지난 5월 또 한 편을 네이처에 보고했다. 미국에서 좋은 학술지에 논문을 썼다는 건 이해하기 쉬우나, 과학의 변방인
울산과학기술원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김하진 교수 방에 들어가니 바로 앞 벽에 칠판이 걸려 있다. 화이트보드에 수식이 가득하다. 칠판은 물리학자가 사랑하는 연구 도구. 그간 취재한 물리학자 대부분은 연구실에 칠판을 갖고 있었다. 반면 대형 칠판을 갖고 있던 생명과학자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지난 1월 18일 찾아간 김하진 교수 방의 화이트보드에 DNA 이중나선구조 그림이 없었다면 그 방은 물리학과 교수 연구실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김하진 교수는 생물물리학자다. 생물물리학자는 물리학자가 개발한 도구를 갖고 생명현상을 연구한다. 김 교수는
고려대학교 생명과학과 우재성 교수를 만나러 가기 전에 그의 논문들을 찾아봤다. 생명과학 학술지 ‘셀(Cell)’에 게재된 논문이 보였다. 하나가 아니다. 둘인가 싶었는데 또 한 편이 있다. ‘셀’은 생명과학 분야 최상위 학술지. 한 편도 쉽지 않은데, 세 편이나 내다니…. 더구나 그는 한창의 나이다. 포항공과대학교 96학번이니 40대 중반.지난 1월 5일 고려대학교 하나과학관으로 찾아가 우 교수를 만났다. 그는 구조생물학자다. 그는 “구조생물학은 화학과 생물학 경계에 있고, 고해상도를 구현하기 위해 첨단 생물물리학(bio-physi
‘Ka Young Chung’이라는 이름이 2012년 노벨상 수상 기념 강연에 등장했다. ‘Ka Young Chung’은 성균관대학교 약학대학 정가영 교수의 이름. 정 교수는 2011년 과학학술지 네이처 표지 논문의 제1저자였고, 그 논문의 교신저자가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브라이언 코빌카(Brian Kent Kobilka) 교수였다. 노벨상 수상자는 수상을 전후해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수상 기념 강연을 하는데, 코빌카 교수는 강연 말미에 자신이 감사해하는 사람 이름들을 언급했다. 지난해 12월 30일 정가영 교수가 보여준
페니실린은 감염을 일으키는 미생물을 죽이는 데 그치지 않고 미생물학까지 위축시켰다. 스코틀랜드 사람 알렉산더 플레밍이 1928년에 개발한 페니실린은 2차 세계대전 때 많은 감염자를 구했지만 페니실린의 등장으로 미생물학은 오히려 위축됐다. 지난해 12월 22일 만난 윤상선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미생물학 교실)는 “미생물학이 다시 중흥기를 맞은 건 1990년대 후반이다. NGS(차세대 서열 읽기)라는 새로운 유전자 서열 읽기 기술이 이때 나왔고 이를 이용해 장내 미생물 군집(Microbiom·마이크로바이옴)을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김완욱 교수(류마티스내과)는 한국의 대표적인 류머티즘성 관절염 연구자다. 2022년 대한면역학회 회장직도 맡았다. 지난해 12월 16일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인근 서울성모병원 내 연구실에서 만났을 때 그는 오전 8시30분부터 환자 52명을 보고 올라오는 길이라고 했다. 지쳐 보였다. 김 교수는 환자를 진료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거기에서 얻은 데이터를 갖고 연구하는 기초의학자다. 임상의사 겸 기초의학자는 국내 대학병원의 경우 의사 1000명 중 10명쯤 될 거라고 그는 말했다.김 교수는 2007년 미국 예일대학
고영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혈액종양내과)는 서울대 의대 99학번이다. 그간 만나온 의생명과학자 중 가장 젊다. 그를 취재해보라고 권한 사람들은 고 교수에 대해 “떠오르는 스타” “수학 올림피아드 출신”이라고 말했다. 연락을 했더니 자신의 스케줄에서 1시간30분가량 비는 날을 세 개 줬다. 그 시간으로는 부족하지만 일단 만나기로 했다. 그는 내가 연락한 첫 번째 임상의사다. 혈액종양내과 의사인데, 서울대학교 병원 사이트에 따르면 그는 백혈병, 혈액암, 림프종을 진료한다.지난해 12월 6일 오후 4시30분 고 교수 연구실로 찾아갔